‘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感想文

예술, 그 중에서도 미술이란 과연 무엇일까? 어떤 재능이 미술을 미술답게 하고 우리에게 예술적 쾌감을 안겨주는가? 이러한 질문은, 예를 들면 마르셀 뒤쌍의 작품 ‘샘(Fountain)’을 대할 때 더욱 대답하기 난감해진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볼 때에는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이던 것이 ‘샘’과 같은 현대의 추상예술에 접어들면 흐릿해지는 것이다.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는 이런 현대미술의 모호함을 고발한 책이기도 하다.

한편 언젠가부터 이러한 제도권의 위선을 비웃으며 미술계의 ‘힙합전사’가 거리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거친 거리의 청년들이 극장의 호화스러운 무대에서 우아한 춤을 추는 대신에 거리에서 골판지를 깔아놓고 힙합댄스(또는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것처럼, 일군의 예술가들은 거리의 벽이나 광고판에 불법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해놓기 시작한다. 그런 예술가들 중에서 내가 알게 된 최초의 거리예술가는 아마도 장 미쉘 바스키아였던 것 같다.

바스키아의 현란한 색채감과 절제되지 않은 형태의 자유분방한 작품을 접한 제도권은 그에게 ‘검은 피카소’란 별명을 지어줬고, 이윤극대화를 위해 그의 재능을 빠른 속도로 확대재생산한다. 결국 그는 그러한 고통스러운 작품‘공장’에서 자신의 재능을 착취당하며 괴로워하다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지만, 거리 예술가는 그 이후에도 꾸준히 명맥을 이어간다. 그리고 한 프랑스인이 이러한 거리의 삶을 아무 생각 없이 필름에 담기 시작한다.

스스로가 거리 예술가인 뱅시(Banksy)가 감독했다는 다큐멘터리(2010년)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티에리 구에타(Thierry Guetta)가 바로 그 사람이다. 영화는 어릴 적 경험한 엄마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모든 것을 비디오로 기록해야만 성이 풀리는 집착증을 가지게 된 티에리가 어떻게 거리 예술가의 모습을 찍게 되었고, 뱅시를 만나게 되었고, 뱅시의 권유에 따라 스스로 거리 예술가가 되어 “상업적으로” 성공하는지를 경쾌하지만 냉소적인 유머감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다큐에 따르면 원래 뱅시는 그가 기획한 미국에서의 전시회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고, 또 다시 거리예술이 제도권의 상업주의에 편입되는 과정을 보면서, 거리예술의 진정한 모습을 티에리의 기록물을 통해 알리기 위해 티에리에게 기록물을 편집해 작품으로 만들 것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티에리의 재앙 수준의 작품에 넋을 잃은 뱅시가 작품의도를 완전히 바꾸고 티에리의 자료를 기초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면서 이 영화가 탄생하게 된다.

즉, 뱅시의 권유에 따라 티에리 스스로가 전시회를 기획하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이 과정이 제도권 미술계의 허영심에 찌든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을 간파한 뱅시가 작품을 거리예술에 대한 소개 다큐가 아닌 거리예술을 기록하고 다니던 티에리의 인생역전 드라마로 바꿔 버린다. 이를 통해 그는 다다이즘, 바스키아, 그리고 뱅시 그 자신 등, 미술계의 연속되는 사기극이 티에리에 이르러서도 반복재생되고 있음을 고발한다.

특히 티에리가 존경하는 뱅시의 권유에 따라 기획한 전시회가 모두의 예상과 달리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하여 어이없는 대규모의 전시회로 만들고, 구인모집을 통해 작품을 제작할 기술자들을 모집하고 – 마치 다큐에 언급된 데미안 허스트처럼 – , 전시장을 기존의 팝아트를 포토샵으로 변형시킨 작품으로 메워가는 과정이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재생산 도식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사기극의 극적효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예술의 자판기 수준이랄까?

예술적 재능과 관련 없는 티에리의 성공에 대해 뱅시 등 거리예술가들은 씁쓸한 미소를 짓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티에리는 여전히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이룬 성공에 흡족해 한다. 작품구입자들은 티에리의 작품이 어떤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건 간에 다음 거래에서 만족할만한 투자수익을 거두기만 하면 되니까, 어쨌든 이 예술계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은 시장이 폭발하기 전까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보관되거나 유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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